한국 단편 문학에서 드러나는 비극성의 전개

텍스트에 담긴 고통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 것인가가 요즘 나의 큰 관심사이다. 한국 문학은 분석 모형을 테스트하고 해석을 연습함에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자료원이다. 그리고 작품에 담긴 문학적 깊이를 알고리즘이 읽지 못함을 느끼면서 데이터 분석가에 필요한 겸손도 배우게 된다.

그 가운데 한국 단편 문학에서 비극성은 어떻게 드러나는지 알아보고 싶어졌다. 여기서 비극성은 “가난”, “슬픔”, “죽음”의 의미 구조로 이뤄진 개념으로 파악하였다. “운수 좋은 날”, “화수분”, “감자”의 원문을 행별로 나누어 의미 변화를 추적해 보았다. 실선은 문장별 측정결과를 의미하고, 점선은 추세선이다. 추세선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살펴보자.

“운수 좋은 날”은 일을 나가지 말아 달라는 아픈 아내와 가난의 묘사를 시작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운이 좋은 하루 덕에 신이 났던 김첨지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 아내를 발견하게 된다. 이때, 비극성은 부드러운 2차 곡선을 그린다. 작품 중간의 김첨지의 행운과 작품 말미의 비극적 장면의 간명한 배치는 이야기의 비극성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김첨지의 동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서술 과정이 곡선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화수분”은 다소 다른 모습을 보인다. 진폭이 크지 않은 3차 곡선이다. 화수분의 가난하고 누추한 삶을 그려내고, 중반 이후에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담담하게 전달한다. 특히 마지막 부부의 죽음은 비극성이 상대적으로 완만한 상승을 보이는데, 이는 죽음에 대한 묘사가 대단히 차갑고 철저한 관찰자의 시점에서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 담담한 묘사가 이야기의 비극성을 더욱 첨예하게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감자”의 비극성은 “운수 좋은 날”과 유사하면서도 다소 변형된 형태로 나타난다. 비극성이 높아지는 지점에서 단계적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운수 좋은 날”이 주인공의 하루 동선을 따라 부드럽게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 반면, “감자”는 주인공이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 과정을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단계성은 주인공의 도덕성이 환경에 의해 파괴되는 과정을 더욱 설득적으로 만든다.

고향에 내려가면 까까머리 시절 한권한권 모았던 문고판 한국 문학 전집을 다시 찾아봐야겠다.

댓글 남기기

워드프레스닷컴에서 웹사이트 또는 블로그 만들기

위로 ↑